송명진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조국대전’이 끝날 기미가 없다. 여야가 어렵사리 정기국회 일정을 10월 2일부터 21일까지로 재확정 했지만, 때 아닌 '삭발 버킷 챌린지'의 열풍은 여전히 뜨거워 이번 국정감사 역시 ‘조국감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위임한 입법권을 저들만의 정략적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의회권력의 횡포이다.
애초 국정감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에 법의 제·개정 활동 외에 행정부의 국정수행과 예산집행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부여한 권한이다. 정부의 독단과 실정을 제어하고 민생현안을 폭넓게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갖기에 국감은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리며 민의의 전당이라는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국회 활동으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도 불의한 공권력의 문제나 소외된 약자의 권리와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이 국감을 통해 알려지고 주목받게 된 사례들이 많다. 수많은 노동조합들이 오래전부터 사업장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국감을 활용해왔으며, 한국노총 또한 주요한 노동이슈와 사업장 문제를 공론화하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국정감사에 조직적으로 대응해오고 있다.
4년 간의 입법활동 결산
올해 국정감사에 한국노총은 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준비해왔다.
먼저 이번이 20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라는 점이다. 국회는 촛불시민혁명,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회기중에 거치며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개혁입법에 대한 열망과 요구에 직면했지만 보수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회기 동안의 현실적인 목표는 지난 4년 간의 입법활동을 결산하고 미이행 제도개선 과제들의 달성을 위한 연내 입법 및 21대 총선 정책화 등 입법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국감은 주요 과제들의 이행정도를 평가하고 입법적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재공론화할 수 있는 유력한 공간이 될 것이다.
또한, 금번 국감은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 노동·사회정책을 중간 평가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노동존중사회, 소득주도성장 등 촛불정신을 담은 의미 있는 국정과제들이 기존의 궤도로부터 이탈되며 수정되고 있는 만큼, 정부 노동사회정책을 비판하며 노동존중 정책기조를 재확립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기업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노동정책의 퇴행을 제어하는 데 있어 국감이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반기 국회에서 노동존중 정책에 대한 총체적 공세와 제도개악 시도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감을 통해 사전에 그러한 제도개악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노동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한편, 올해 대응활동을 계획하며, 매해 이뤄진 한국노총의 국정감사 대응활동에 분명 성과도 있었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하고 개선하고자 한다.
기존의 성과로는 ▲노총의 주요 정책요구 및 입법대응과제를 종합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던 점, ▲민주당을 비롯한 각 정당·의원실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한 점, ▲조직현안 해결을 위한 여론화 및 입법활동 지원이 이루어진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노총 핵심 정책의제가 실제 각 정당·의원들의 국감 주요의제로 반영되지 못하고 형식화 된 측면이 있다. 여야 정당에서 친노동자적 입장이 소수화되거나 고립되는 한편, 개별 의원들의 국감활동이 언론주목 위한 인기 영합적 의제 위주로 전개되는 문제가 나타난데 따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감대응활동이 조직적인 투쟁·선전활동과 결합되지 못하는 것 역시 극복해야할 숙제로 지적되었다. 투쟁과 선전을 통한 노총 주도적 여론 형성 없이 의제제출만으로는 국감의제로서의 관심도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민생감사, 노동존중·경제개혁 국감
이와 같은 정세인식과 문제의식에 기반해, 한국노총의 국정감사 대응활동은 “조국감사”가 아닌 “민생감사”, “무조건 기업살리기 국감”이 아닌 “노동존중·경제개혁 국감”으로의 프레임 전환에 주력할 것이다.
또한 불리한 경제여건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기업살리기만을 위한 무조건적 규제완화나 노동정책 후퇴에 대한 주장이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바로잡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개혁적 정책방향성을 유지·확립시키며,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불공정 경제구조 개선에 기초한 한국경제 체질 전환을 하반기 국회 중심이슈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한 시기이다.
나아가 국감활동을 의제제출에 그치지 않고 하반기 투쟁 및 경제민주화 캠페인과 연계되도록 해 나갈 것이다. 기자회견, 캠페인 등을 통해 순차적으로 핵심의제들을 사회여론화시키는 한편 하반기 한국노총 투쟁 목표로 설정해 전조직적 실천활동과 결합시킬 것이다.
한국노총은 8월 초 사무총국 전체 본부가 참여하는 국감대응활동TF를 구성하고 의제개발을 추진해왔다. 노총 회원조합들로부터 노동현안과 관련된 현장사례들과 회원조합 정책의제를 취합하기도 했다.
주요 정책의제들은 ▲ILO 협약비준 및 노조법개정(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 촉구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수정·보완) ▲1주 최대52시간제 현장안착(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시간제 무분별 확산 방지, 노동시간 단축 관련 정부지원대책 보완 및 근로감독 확대) ▲최저임금인상 및 제도개선(최저임금 산입임금의 통상임금 간주, 최저임금 1만원 미이행 후속대책 마련, 일방적인 최저임금 결정체계 변경 중단) ▲비정규직 차별철폐 및 사각지대 해소(정규직 전환 민간 확산, 공공부문 민간위탁사무 재정비, 특고·문화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 개선,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부작용 해소) ▲사회안전망강화(국민연금 개혁,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사회보험료 사용자 귀책 체납근로자 구제,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 사학연금 적용 노동자 고용보험 가입) ▲경제민주화(노동자 이해대변기구 확대·개선) 등이다.
여기에 ▲국공립대 조교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디지털플랫폼노동자의 사회적 보호방안 마련 ▲방송제작 현장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 개선 등 노동권 사각지대를 다룬 15개의 일반의제들과, 현장의 현안과 정책대안을 담고 있는 22개 회원조합의제들로 금년도 한국노총 국감 정책의제를 구성했다.
한국노총 국감대응 TF는 지난 8월 30일 더불어민주당 환노위 보좌진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가진 한편 야당 주요 의원실에도 정책자료를 전달하고 국감질의에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다. 국공립대조교 이슈나 서울반도체 산재사고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해당 관계자들에 대한 국감 증인신청이 이루어지는 등 올해 국감의 주요 사안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노총의 더 많은 정책과제들이 국감에서 점검될 수 있도록 각 정당과 의원실에 협력을 요청하고 있으며, 경제민주화 의제의 경우 시민사회단체들과의 공동 기자회견 및 캠페인을 통해 국감의제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한국노총은 20대 마지막 국정감사를 비롯한 하반기 국회에서 제도개악과 정책후퇴가 시도되는 것을 단호히 저지하고, 노동현안을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하며 노동존중 정책기조의 재확립 계기로 만들도록 총력을 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