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페이스북을 통해 부고를 접했다. 조금은 이른 죽음이라고 상주는 적었다. 사소한 오자가 눈에 밟혔는데, 그 황망한 마음을 거기서 읽었다. 추모글 앞에 ‘삼가’ 표현을 붙일지를 고민했다. 힘내란 말은 썼다 지웠다. 똑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나는 뵌 적 없는 분이었기에 그의 삶을 알 길 없지만, 내 늙은 아버지를 떠올리고서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았다고, 집 하나, 차 한 대 척척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버지는 언젠가 소주잔 비우며 내게 말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고 말았는데 후회된다. 당신의 노력과 헌신 덕에 나는, 또 내 가족은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다. 건설 현장 고된 노동이 곧 나의 밥이었으니, 나는 아버지의 노동에 빚진 게 많았다. 척박한 땅에서 동생이며 자식까지 줄줄이 달린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 몸은 성한 곳이 적다. 식탁엔 약 봉투가 많다. 거칠거칠한 그 손으로 이제는 고추와 토마토와 마늘과 양파 따위 온갖 것을 밭에 키운다. 어제 오후 박스에 담겨 내 집 앞으로 온 것들이다. 주소를 묻느라 아버지는 내게 가끔 전화했다. 네, 네 하고 끊고 말았다. 부고를 전해 듣고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했다. 식사는 하셨냐고, 날 더운데 어찌 지내시느냐고, 건강 챙기시라는 뻔한 말을 전했다. 그 끝에 아버지는 계시냐고 안부만 묻고는 끊었다. 전화 한 통 뭐 어려운 일이라고 자꾸 거른다. 딸아이와 장난치느라고, 나의 초능력에 관해 얘기한다. 너의 기분과 머릿속 말을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아이는 얼마간 믿는 눈치였다. 엄마는 귀신이라고, 네가 거짓말하면 다 안다고 늙은 어머니가 오래전 당신의 초능력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는데, 뭔지 알 것도 같다. 조만간 시골집에 내려가 오래 미뤄둔 아버지의 초능력에 관해서 얘기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