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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명+α

등록일 2019년07월23일 11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지현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지난 4월 수원의 한 공사현장에서 25살 청년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김태규. 그는 5층 엘리베이터에서 폐자재를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반대쪽에 열려있던 문 옆으로 추락했다. 김태규의 누나는 기자회견에서 “동생은 유령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아닌 일용업체 사장 이름으로 등록돼 일하면서 공사 현장에서 안전장비나 안전교육도 없이 일하다 죽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10일에도 27살 젊은 노동자가 죽었다. 부산 동래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 16층에서 승강기 수리를 하던 노동자는 2층 승강기 틈에 끼인 채 동료 직원들에게 발견됐다. 이번에도 역시 그는 혼자 일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노동자 추락사를 검색해 본다. 검색하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죽음이 그곳에 있다. 불과 몇 달 사이. 공장 지붕을 보수하던 일용직 노동자가 죽었고, 광주수영대회 관람석 공사를 하다가 추락해 죽었다. 승강기 통로를 청소하던 일용직 노동자 2명이 동시에 추락해 죽고, 기계식 주차장을 수리하다 죽고, 태양광 판을 설치하다 죽었다. 올해 쓰인 죽음의 기사만 몇 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이런 가운데 국무총리는 올 상반기 산재 사망자가 7.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기준 503명에서 465명으로 감소했다며 하반기에 더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들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꼈다면, 사망자 7.6% 감소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죽은 465명에 대한 애도가 먼저여야 했다. 


465명. 누군가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평생 가족을 돌보았던 어머니, 아버지였을 것이다. 평소처럼 아침 인사를 건네고 나갔을 그들은 저녁 밥상에 없다.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이다. 남겨진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넘어가지 않는 밥을 삼키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한겨레에 “아,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글을 썼다.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고 노동을 관리하는 정부관리가 와서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그다음 날 노동자들은 또 떨어진다. 사흘에 두 명꼴로 매일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 <중략> … 왜 바로잡지 못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즉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 노동자들은 돈이 없어서 죽는다. 힘이 없어 죽는다. 그러니 안전화가 지급되지 않아도 안전벨트가 지급되지 않아도 그냥 일한다. 무식해서, 안전 불감증이라서가 아니다. 그 정도를 요구하는 것만으로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알 뿐이다. 굶어 죽으나 떨어져죽으나 그들에겐 매한가지다. 그러니 그것은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살인이다. 안전벨트가 있었다면 살았을 노동자가 죽었으면 그것은 안전벨트를 지급하지 않은 사용자에 의한 살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그걸 사고라고 한다. 그저 죽음의 숫자가 하나 늘어났을 뿐이다. 


공사를 마친 수영대회 관람석엔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앉아 개막식을 축하한다. 제1야당 대표가 앉아서 졸고 있다는 기사가 도배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들이 앉아서 관람하고 있는 관람석을 짓다가 추락한 노동자가 있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 한 명쯤은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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