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랗고 붉은 나뭇잎을 찍으려 했는데, 어이쿠 그만 초점이 빗나갔다. 거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양지바른 곳에 우뚝 선 건물 벽에 누군가의 탄신 98주년을 기념하는 강연회 현수막이 붙었고, 손 뻗어 저 높은 데를 가리키는 아무개의 큼직한 초상화가 내걸렸다. 조국 근대화의 영웅이라고 큰 글씨 새겨 알렸다. 안쪽 5.16마당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 경부고속도로 준공 기념식을 재현했고, 온갖 산업현장 시찰에 함께했다는 검은색 지프차를 전시했다. 그건 금방이라도 시동 걸고 달릴 것처럼 반짝거렸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어록 앞에서는 등산복 차림 초로의 남녀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록색 선명한 새마을 깃발이 높다란 깃대에서 펄럭였다. 초점이 저기 맞은 덕에 별꼴 구경을 다 했다. 이게 다 장비 탓이고 미숙한 조작 때문이었으니 판사님 저는 죄가 없습니다. 그저 눈 감고 탄식했을 뿐입니다. 국정 걱정 따위 다 지난 일로 미루고 새벽종 울리는 새 아침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초점 잡는 법 훈련에 매진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