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를 다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개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으나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 <또 하나의 약속>이 고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은 서로 다른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익숙하고도 낯선 이웃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의 시작은 낯설다. 첫 장면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흰색 방진복을 입은 여성들의 단체사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색의 그녀들. 얼굴에서 두 눈만 드러낸 채 카메라를 향한 그녀들의 사진은 이상하게 낯설다. 입가가 보이지 않고 오직 두 눈만 보이지만 어딘가 웃음을 머금고 있는 듯한 사진.
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19살 나이에 삼성반도체 회사에 입사한 여성들이다. 이 사진 속의 여성들 중 일부는 직업병에 걸려 이미 죽었거나 병을 앓고 있거나 퇴사했다. 사진 장면은 바로 그들의 작업 모습을 촬영한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방진복을 입고 오직 기계들의 소음만 들리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SF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어지는 장면은 개나리, 라일락과 같은 꽃 이름을 달고 있는 아파트다. 삼성 직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형 기숙사다. 동일한 격자로 늘어선 아파트 창문들을 길게 보여주면서 그 위로 여성들의 인터뷰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의 그녀들은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탐욕의 제국>의 도입부 장면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전혀 모르는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그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 밀폐된 공장과 반듯하게 늘어선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고 있는 것일까?
들리지 않는 외침, 탐욕의 제국과 세월호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피해자들의 분노와 슬픔의 목소리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대신 담담하고 냉정하게 그들의 퇴사 후 일상과 삼성에 대한 투쟁기를 보여준다. 이것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의 크기가 더 작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분노와 슬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고, 이들이 그 분노와 슬픔을 절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절규하더라도 대답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입사한 꿈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백혈병으로 죽은 고 황유미 씨와, 딸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싸우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 씨.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 자신의 삶에,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슴에 담겠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투쟁현장으로 가는 이윤정씨.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울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한혜경 씨. 그들의 목소리는 대한민국 거리 위에 낮게 가라앉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오는 거리에서 한 여성의 절규는 묵음 처리 되어 들리지 않는다. 그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누구도 듣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진실 역시 우리가 모르고 있던 진실이 아니다. 알지만 외면해왔던 진실. 그것이 거대한 참사로, 저 바다 속 아이들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외침도 삼성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거대한 탐욕의 제국은 분노와 슬픔조차 집어삼켜버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든다. 삼성반도체에 19살 소녀들이 꿈을 안고 입사했을 때, 대기업 삼성 직원이란 자부심이 직업병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대기업 삼성 직원이란 꿈, 행복의 가치가 돈의 가치와 비례하게 된 사회, 그 탐욕의 제국에 어쩌면 우리 모두의 욕망이 동참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의 마지막 장면, 그 들리지 않는 외침이 세월호 참사의 현실과 조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