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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제국> 들리지 않는 외침

자본의 욕망에 먹힌 인간의 가치

등록일 2014년05월19일 16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를 다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개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으나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 <또 하나의 약속>이 고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은 서로 다른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익숙하고도 낯선 이웃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의 시작은 낯설다. 첫 장면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흰색 방진복을 입은 여성들의 단체사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색의 그녀들. 얼굴에서 두 눈만 드러낸 채 카메라를 향한 그녀들의 사진은 이상하게 낯설다. 입가가 보이지 않고 오직 두 눈만 보이지만 어딘가 웃음을 머금고 있는 듯한 사진.


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19살 나이에 삼성반도체 회사에 입사한 여성들이다. 이 사진 속의 여성들 중 일부는 직업병에 걸려 이미 죽었거나 병을 앓고 있거나 퇴사했다. 사진 장면은 바로 그들의 작업 모습을 촬영한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방진복을 입고 오직 기계들의 소음만 들리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SF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어지는 장면은 개나리, 라일락과 같은 꽃 이름을 달고 있는 아파트다. 삼성 직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형 기숙사다. 동일한 격자로 늘어선 아파트 창문들을 길게 보여주면서 그 위로 여성들의 인터뷰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의 그녀들은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탐욕의 제국>의 도입부 장면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전혀 모르는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그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 밀폐된 공장과 반듯하게 늘어선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고 있는 것일까?

 

들리지 않는 외침, 탐욕의 제국과 세월호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피해자들의 분노와 슬픔의 목소리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대신 담담하고 냉정하게 그들의 퇴사 후 일상과 삼성에 대한 투쟁기를 보여준다. 이것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의 크기가 더 작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분노와 슬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고, 이들이 그 분노와 슬픔을 절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절규하더라도 대답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입사한 꿈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백혈병으로 죽은 고 황유미 씨와, 딸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싸우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 씨.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 자신의 삶에,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슴에 담겠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투쟁현장으로 가는 이윤정씨.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울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한혜경 씨. 그들의 목소리는 대한민국 거리 위에 낮게 가라앉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오는 거리에서 한 여성의 절규는 묵음 처리 되어 들리지 않는다. 그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누구도 듣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진실 역시 우리가 모르고 있던 진실이 아니다. 알지만 외면해왔던 진실. 그것이 거대한 참사로, 저 바다 속 아이들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외침도 삼성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거대한 탐욕의 제국은 분노와 슬픔조차 집어삼켜버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든다. 삼성반도체에 19살 소녀들이 꿈을 안고 입사했을 때, 대기업 삼성 직원이란 자부심이 직업병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대기업 삼성 직원이란 꿈, 행복의 가치가 돈의 가치와 비례하게 된 사회, 그 탐욕의 제국에 어쩌면 우리 모두의 욕망이 동참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의 마지막 장면, 그 들리지 않는 외침이 세월호 참사의 현실과 조응한다.  

 

강준상 영상노동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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