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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선 김재봉과 이준태

등록일 2015년11월27일 14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대한민국이 수립된 것은 1919년이다. 임시정부였다. 조선 왕조는 망했고, 그 지배층은 나라를 팔아먹기 바빴다. 조선 왕족은 자의타의로 일본 황족에 편입됐다. 조선 귀족 대부분은 친일파가 되었다. 군주국 조선은 망했다. 해방된 조선은 더 이상 군주국이 아닐 터였다. 1919년 3.1 만세운동은 공화국을 향한 출발점이었다. 그 열망을 담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됐다. 조선의 마지막 이름은 대한제국이었다. 여기서 군주를 뜻하는 제(帝)를 빼고, 민(民)을 넣었다. 공화국이 된 것이다.


3.1운동은 대한민국을 건국시켰다는 의미에 더해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탄생시켰다. 1920년 2월 조선노동대회가, 4월 조선노동공제회가 출범했다.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출발 역시 3.1운동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이 서로 갈라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친일파에서 이후 친미파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지배층들이 노동운동을 줄기차게 억압하고 탄압한 역사적 배경이었다.

 


사진 왼쪽은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지낸 김재봉이다. 1891년 안동 풍산에서 태어난 김재봉은 1919년 3월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했고, 1920년 2월 결성된 조선노동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1920년 12월 말 일제경찰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선노동대회 대표 자격으로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하였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공산당 조직에 진력하여 1925년 4월 17일 마침내 조선공산당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고문과 감옥 생활로 몸을 상한 김재봉은 애달프고 스산한 날을 보내다 1944년 3월 죽었다.


사진 오른쪽은 잊혀진 사회주의 운동가 이준태다. 1892년 김재봉과 같은 안동 풍산에서 태어난 이준태는 임시정부 자금 지원, 순회강연을 통한 문화운동을 펼치다가 사상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역시 1925년 창당한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2년에는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무산자동지회와 무산자동맹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26년 6.10 만세운동에 깊이 관여한 이준태는 4년 넘게 감옥 생활을 한 후 1930년 출소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우울한 날을 보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이 안동을 장악한 시기에 고향에 나타난 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이들은 대한민국과 상관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본다면, 김재봉과 이준태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킨 사람이 된다. 친일파만이 대한민국의 건국자라 주장해야 하는 친일파의 후예들은 민족해방을 위해 싸운 공산주의자들의 흔적을 대한민국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자신의 정통성이 3.1운동과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시함으로써 사진 속 인물들인 김재봉과 이준태도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이자 자랑스러운 국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차이점은 전자는 새누리당의 색깔인 빨간색의 단색 국가인데 대한민국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 다색 국가란 점이다. 대한민국 건국 역사는 굉장히 다채로우며, 노동운동도 건국자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 이뤄졌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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