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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을 종결지은 소련군

등록일 2015년06월01일 14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서방에서는 5월 8일, 러시아에서는 5월 9일이 전승기념일이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2차 대전의 승자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소련이 없었다면 2차 대전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나치의 아성 베를린을 함락시킨 건 소련군이었다. 1945년 4월 중순 소련군은 베를린 교외로 몰려들었다. 두주 전인 4월 5일엔 일본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파기했다. 전쟁 전 4백만에 달했던 베를린 인구는 소련군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소련군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베를린을 짓눌렀다. 베를린에 진입한 소련군은 독일군과 뒤죽박죽이 되었다. 전방에 있는 부대가 독일군인지 소련군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격렬한 시가전을 벌인 소련군이 베를린의 심장부인 티어가르텐 공원과 국회의사당 근처에 이른 게 4월 29일이었다.


4월 30일 새벽 일군의 소련 보병이 적기를 들고 포복으로 돌진해 의사당 건물 일층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의사당 안에 집결한 독일군 수천 명을 진압하는 데 여덟 시간 넘게 걸렸다. 오전 11시 소련군 두 명이 의사당 지붕에 적기를 꽂았다. 이 장면은 비행기를 탄 사진사에게 찍혔고, 2차 대전의 끝을 알리는 유명한 장면이 됐다(사진 참조).

 


같은 날 의사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제국청사 지하 벙커에서 히틀러가 자살했지만, 전투는 이어졌다. 독일은 강화 조약을 원한 반면, 소련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마침내 5월 2일 아침 독일군은 항복을 결정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히틀러가 자살 직전 지명한 승계자 되니츠제독은 덴마크 국경 지대인 플렌스부르크로 달아났다. 이들은 서방과 교섭을 한 끝에 미군에 항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5월 7일 연합군 본부가 있던 프랑스 랭스로 날아온 독일군 지휘부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서방과 나치 지휘부의 농간에 스탈린은 화가 났다. 소련 인민과 군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했다. 항복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다뤄져야 하며, 승자의 영토가 아니라 파시스트 침략이 발생한 곳, 즉 베를린에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 8일 자정 무렵 베를린 중심부에 자리한 의사당에서 동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진 카를스호르스트에 위치한 공병학교 식당 건물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히틀러의 참모본부장 빌헬름 카이텔 원수로부터 항복 서명을 받았다.


5월 9일 이른 아침 모스크바에서 승리가 선포되었다. 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앞에 모인 군중은 루스벨트 만세를 외쳤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 달 전 4월 12일 뇌출혈로 급사했다. 소련 인민의 애국심과 인내력에 더해 소련 공산당의 지도력과 창의성이 합쳐 이뤄진 전쟁 승리로 스탈린은 인생의 최절정에 서게 됐다. 승리의 대가는 엄청났다. 사망자만 2천5백만에 이르렀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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