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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공제회, 최초의 전국노동단체

등록일 2015년04월27일 14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전국 규모의 노동단체가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다. 1920년 4월 11일 서울에서 발기인 286명을 포함하여 678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가운데 출범한 조선노동공제회는 강령으로 ① 인권의 자유평등과 민족적 차별의 철폐를 기함, ② 식민교육의 지양과 대중문화의 발전을 기함, ③ 노동자의 기술양성과 직업소개를 기함, ④ 각종 노예의 해방과 상호부조를 기함을 내세웠다. 출범장 주변은 일제의 기마경관 70명이 삼엄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조선노동공제회는 개인 자격으로 가입을 받았고, 노동자들을 지역 지부와 직업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등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애썼다. 인쇄노조, 전차노조, 토목노조, 양복공노조, 양화공노조, 운전수노조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이 만들어졌다. 신문배달부, 인력거부, 지게꾼, 물지게꾼, 정미공, 인쇄공, 연초공이 많이 참여했다.


평양, 대구, 안악, 개성, 혜산, 정읍, 황주, 군산, 북청, 신창, 신천, 광주, 안주, 영흥, 안동, 인천, 영주, 강화, 양양, 고산, 청진, 진주, 경주 등에 지방지회를 두는 등 명실상부한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다. 지방에서는 소작농민들도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은 3·1운동 직후 고양되기 시작한 민중 의식의 성장과 맞물려 그 회원 수가 1921년 3월에는 서울 6천7백인과 지방 1만1천인 등 모두 1만7천여 명을 넘어서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1920년 5월 조선노동공제회는 기관지 『共濟』(공제)를 창간했다. 일 년도 되지 않아 회보와 잡지의 총 부수는 1만6천600부를 넘어섰다. 노동야학을 열었고, 소비조합 활동을 벌였다. 또한, 양복직공, 운수노동자, 부두노동자들의 동맹파업과 소작인들의 투쟁에도 적극 관여했다. 당연히 조선노동공제회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과 1918년 1차 대전 종전 이후 조선으로 노도처럼 밀려들던 온갖 사상이 경합을 벌였다. 시대의 사조를 반영하여 조선노동공제회의 노선은 점점 민족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기울어갔다.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조직의 분열과 약화로 귀결되었고, 마침내 조선노동공제회는 1924년 4월 출범한 조선노농총동맹으로 해소됨으로써 막을 내리고 말았다.

 


 

조선노동공제회와 관련된 사진은 출범 소식을 다룬 신문기사를 빼면 기관지 『共濟』 창간호 것이 유일한 듯하다. 공제는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 함께 일함이란 뜻이다. 언덕 위 여러 사람들이 줄을 잡고 깃발을 올리는 그림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평등을 염원했던 백 년 전 노동운동 선배들의 맥박을 느낄 수 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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