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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운동의 시대를 열망했을 유관순

등록일 2015년03월23일 14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지금의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9월 28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과 가혹행위 후유증으로 죽었다. 17년 9개월을 살다 갔다. 작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죽어간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의 또래다.

 

 

열네 살 때인 1916년 당시 충청남도 공주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엘리스 샤프의 추천으로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했고, 1919년 고등부로 진학하였다. 유관순의 여고시절은 바로 끝이 났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임시휴교령을 내렸고, 유관순은 3월 8일 열차 편으로 서울에서 고향 천안으로 돌아왔다.

 

유관순이 살던 때는 격동의 시기였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군이 왕궁을 포위한 가운데 체결된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국이 된다.  협약 체결로 한국 내 외국 공사관들은 모두 철수하였다. 한국에는 통감부가 설치되고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중국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열차 회담을 가진 후 하차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다. 이듬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11년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이 일어나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으로 일컬어지는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17년 11월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끄는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가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음을 선언했다.

 

1918년 11월에는 독일에서 노동자-병사가 주도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붕괴하고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제국주의 전쟁과 공산주의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치솟던 민족해방을 향한 열망은 식민지 조선의 서울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꽃샘추위를 맞던 명민한 소녀의 가슴 안에서 거세게 울렁거렸다.

 

3.1 운동의 열기 속에서 1920년대 조선의 사회운동은 꽃을 피운다. 1920년 4월 조선노동공제회, 5월 조선노동대회가 창립했다. 1922년 10월 조선노동연맹회,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이 조직됐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이 발발했고, 1927년 2월 신간회가 출범했고, 5월 원산총파업이 단행됐다. 1929년 11월에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에도 처참한 고문을 당하다 출옥 예정일을 이틀 남기고 옥사하였다. 그녀가 살아남았다면, 필시 1920년대 활발했을 사회운동이나 정당건설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유해는 이태원공동묘지에 묻혔다가 해방 후 이곳이 군용기지가 되면서 파헤쳐져 사라졌다. 사진은 유관순의 수형기록표 앞면이다. 키가 5척6촌(170센티미터 정도)이라 쓰여 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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