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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전쟁의 산물 국제노동기구(ILO)의 탄생

등록일 2015년02월24일 13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수천 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계열강들은 두 가지 상반된 길로 나아갔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말 볼셰비키가 이끈 혁명이 일어나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했다.


공산주의 파도는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을 휩쓸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사회주의 러시아는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고군분투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연합국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개선할 필요를 느꼈다.
 

전후 세계 질서를 설계하러 세계열강의 지도자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였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영국 수상 데이빗 로이드 조지, 프랑스 수상 조지 클레망소, 이탈리아 수상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올란도가빅포(Big Four)로 불리며 강화회의를 이끌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아시아 강국으로 떠오르던 일본도 영국의 전폭 지원 아래 전승국 자격으로 5명의 대표단을 보냈다. 당시 파리는 혼란스러웠다. 퇴역 군인들이 거리에서 군복을 입고 구걸을 했다. 좌익은 혁명을 외쳤고, 우익은 탄압을 외쳤다. 파업과 시위가 줄을 이었다.
 

파리 강화회의가 설치한 노동위원회는 1919년 1월과 4월 파리와 베르사유를 오가며 국제노동기구(ILO)의 밑그림을 그렸다. 미국 노동연맹(AFL) 위원장 사무엘 곰퍼스가 의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벨기에, 쿠바,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폴란드, 영국, 미국 아홉 개 나라로 이뤄졌다. 각국의 노사정 대표자를 한데 모아 3자 기구로 한다는 안이 마련됐다. 국제 노사정 3자 기구에서 모든 나라와 공장에 적용되는 국제 노동법을 만들자는 목표를 실천할 조직으로 국제노동기구를 만드는 데 합의한 것이다.
 

국제연맹과 달리 국제노동기구는 패전국 독일을 참여시켰다. 그래서일까. 국제연맹은 제 역할을 못하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문을 닫았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는 출범한 지 백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잘 활동하고 있다. 출범 후 2년도 안 된 1921년까지 국제노동기구는 16개 협약과 18개 권고를 채택하면서 왕성하게 일했다. 노동시간 단축, 여성노동자 보호, 아동노동 제한, 야간노동 억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국제노동기구의 첫 세계 총회는 1919년 10월 29일부터 11월 29일까지 한 달 동안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팬아메리카유니언 빌딩에서 열렸다.
이때 국제노동기구는 6개 협약을 만들었다. 제1호 협약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사진은 총회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국제노동기구 직원들의 모습이다. 전쟁과 혁명의 세대였던 이들의 머리와 손발을 거쳐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노동법이 태어난 것이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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